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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과 정신건강

심리학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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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은 인간의 행동과 심리 과정을 과학적으로 연구하는 과목으로서, 인문과학에서부터 공학, 예술, 자연과학에 이르기까지 많은 분야에 공헌하고 있다. 인간이 관계된 모든 분야에 직접적으로나 간접적으로 인간의 행동과 사고에 관한 연구인 심리학의 학문적 뒷받침이 요구되기 때문에 특히 고도의 정보화 사회가 되어가면서 인간의 삶의 질과 관계된 문제들이 점점 더 그 중요성을 더하고 있고 이러한 문제에는 감각, 사고, 지능, 지각, 성격, 적성 등의 인간 특징이 고려되어야 하므로 인간의 기저 원리와 행동 원인을 밝히는 심리학은 미래 사회에서 그 중요성을 점점 더해갈 것이다.

 

심리학의 정의

과학적인 절차를 수용하기 시작한 근대의 심리학 이후에서는 '행동에 대한 과학'이라고 정의할 수 있고, 일반적으로 "인간의 행동과 정신 과정, 영혼에 대한 학문"인 심리학은 다양한 접근방법만큼이나 조금씩 그 정의의 폭을 달리할 수 있겠다.

 

심리학의 역사

현대 심리학의 정립 이전의 심리학은 그 경계가 모호하여 철학자들이 다루는 영역으로 간주하여 왔다. 기원전부터 '심리학'에 대한 개념을 사용하지 않았을 뿐, 심리학에 대한 생각은 계속해서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일찍이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인식론에 관한 문제를 다루었으며, 그에 대한 논쟁은 르네상스 이후 데카르트와 스피노자 등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특히 데카르트는 심신 문제에 있어 이원론을 주장함으로써 마음과 몸이 별개의 실체임을 주장하여 마음에 대한 탐구를 중시하는 현대 심리학의 입장과는 사뭇 다른 입장을 갖고 있었다. 영국의 의사 윌리스는 정신과적 치료 목적으로 뇌 기능을 연구하면서 "정신의 법칙"을 다루는 학문으로서 심리학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다. 이로써 19세기에 이르러 심리학은 철학에서 완전히 분화되어 과학의 한 분야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

1879년, "실험 심리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분트는 라이프치히 대학에 최초의 심리학 연구소인 정신물리 실험실을 개설하였다. 그는 심리학을 연구하는 방법론으로 '내성법'을 주장하였다. 미국의 철학자 제임스는 1890년 '심리학의 원리'를 출간하였다. 그는 당시 심리학에서 다루는 대표적인 문제에 초점을 두고 이 책을 저술하였다. 에빙하우스는 베를린 대학에서 기억에 대한 선구적인 실험을 수행하였고, 러시아의 파블로프는 유명한 고전적 조건 형성 실험을 통하여 학습 과정을 연구하였다. 

 

프로이트와 정신분석 심리학

1890년대에 이르러 오스트리아의 프로이트는 정신분석학을 주장하여 독자적인 심리학 영역을 만들었다. 그는 인간의 행동을 의식과 무의식, 자아와 초자아라는 개념으로 설명하면서 인간 행동의 기반을 성적 에너지인 리비도와 죽음의 본능인 타나토스로 보았다. 프로이트 이후 직접적, 간접적으로 그의 영향을 받은 수많은 정신 분석가들이 배출되었으며, 그들 중 유명한 학자로는 '개인심리학'을 창시한 아들러,  '분석심리학'을 창시한 융 등이 있다. 그러나 정신분석학은 곧 경험적 증거의 부족, 과학적 엄밀성의 결여, 이론체계의 반증 불가능성 등으로 인해 혹독한 비판을 받았으며, 특히 과학철학자 포퍼에 의해 유사 과학의 세 가지 사례 중 하나로 지적받게 되면서 그 지위를 위협받게 되었다. 그러나 현재는 오히려 칼포퍼가 주장한 경험적 증거와 반증 가능성이 과학의 주요한 속성이라는 주장이 반박당하고 오류를 지니고 있음이 밝혀짐에 따라 이러한 지적은 상당히 수그러들었다. 현대에는 정신분석학은 주로 임상가들에 의해 그 명맥이 이어지고 있으며, 오히려 정신분석은 문학비평 등 심리학이 아닌 타 분야에서 주목받는 추세라고 할 수 있다.

 

형태주의 심리학

형태주의 심리학은 1910년에서 1912년에 걸쳐 2년간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 시기는 독일 심리학자 베르트하이머가 자신의 논문<운동지각에 관한 실험연구>을 통해 일상적인 지각 현상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 시기이기도 하다. 게슈탈트 심리학의 창립에는 물리학자인 마흐, 철학자 칼 슈툼프, 에렌펠스의 세 사람이 큰 영향을 끼쳤다. 마흐는 특정한 공간과 형태는 더 기본적인 요소로 환원될 수 없다고 하였다. 또한 에렌펠스는 "형태질"의 존재를 주장하며 특정한 경험의 질은 개별적인 감각 요소 이상임을 역설했다. 슈툼프는 분트와의 논쟁에서 숙달된 청자들이 그렇지 않은 일반인들보다 음악적 관찰자로서 더 적합함을 주장하였다. 베르트하이머는 가현운동에 주목하였으며, 이는 실제로는 없었지만 지각된 움직임을 '파이'운동이라 불렀다. 이를 토대로 그는 "부분 과정 자체가 전체의 고유한 성질에 의해 결정된다"는 결론을 내렸다. 베르트하이머의 피험자였던 콜러와 코프카 역시 게슈탈트 심리학자였으며, 모두 슈툼프 밑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특히 코프카는 게슈탈트 심리학을 미국으로 전파하는 데 큰 역할을 하였고, 콜러는 이후 게슈탈트 이론의 보급에 노력을 쏟았다. 이들은 게슈탈트 현상이 어떤 원리로 움직이는지에 관심을 기울여 연구하였으며, 이 연구로 밝혀진 것들을 게슈탈트 체제화 원리라는 이름으로 발표하였다. 이 원리는 근접성, 좋은 연속성, 유사성으로 이루어져 있다. 레빈은 여러 가지 이력을 지닌 심리학자였다. 그는 발달심리, 사회심리 등 여러 분야에 걸쳐 업적을 남겼으며 특히 사회심리학의 창시자로 여겨진다. 그의 장 이론은 생활공간이라는 개념을 핵심으로 하며, 이에 따르면 행동에 영향을 주는 것은 사람과 환경 둘 다이다. 레빈은 이를 B=f라 나타냈으며 그의 위상기하학을 차용하여 자신의 개념을 시각적으로 표현했다. 이외에도 리더십 연구, 개별 사례 연구 등의 업적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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